한밤의 도서관

저체온증

uragawa 2017. 10. 27. 14:30

왜 이런 집을 놔두고 죽었을까? 그는 궁금해졌다. 이곳에 의지하고 살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일까?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경험상 자살의 동기들은 예측 불가능하고 개인의 재정 상황과도 관련이 없었다. 대부분의 자살은 남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다.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청소년, 중년층과 노년층.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끝내기로 결심한 사람들.



“알겠지만 우리 아버지는 노동자였어.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더 가난하게 살다 가셨지. 어머니 역시 매한가지였고, 우린 아무것도 가져본 적이 없었어. 쥐꼬리만한 것도. 난 다른 인생을 원했어. 가난에서 도망치고 싶었어. 좋은 집을 사고 싶었어. 좋은 것들을 소유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어. 당신이 그 남자라고 생각했어. 우리가 크나큰 행복을 안겨줄 삶을 함께 시작했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집을 나가버렸으니까. ”



“운명은 처음부터 내 편이 아니었어.” 하들도라가 말했다.
“그랬을지도.”
“‘그랬을지도’는 없어.”
“그래.”
“왜 그런지 알아?”
“아마도.”
“운명이 내 편이 아니었던 이유는 내가 관계 속에 백 프로 나를 던졌기 때문이야.”



긴 침묵이 흐른 후 트리그비가 말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사람들이 떠나는 걸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고 버스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은 하루 종일 떠나요.”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고 싶지는 않습니까?”
“아뇨. 나는 아무데도 가지 않아요. 백만 년 동안은. 아무데도 가지 않아요. 버스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게 두지 않아요.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말해보세요. 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나요?”



버려진 집을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단다. 마지막 날에 우리 가족은 방에서 방으로 걸어 다녔는데, 그때 느낀 공허감이 한시도 나를 떠나지 않아. 마치 우리가 우리 인생을 그곳에, 그 낡은 문과 벽창호들을 두고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어. 우리에게는 더이상 인생이 없을 것 같았지. 어떤 힘이 우리 인생을 영원히 앗아가버렸다.



우연이란 비와 같아서,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도 바르지 않게 사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내린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때로는 소위 운명이라는 것을 형성하기도 했다. 우연이란 난데없이 등장했다. 예상치 못하게, 기이하게, 설명할 수 없게.



이 사건은 손에 잡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이, 의심에 의심만 쌓인 사건입니다. 근거로 삼을 것이라곤 파편들뿐이죠. 제게는 단순한 연결 고리들이, 나중에 발생한 사건들을 잇는 일종의 배경이 필요합니다. 이야기 속 간극을 채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