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uragawa 2017. 10. 23. 21:58

나는 어릴 때부터 남에게 의지하거나 응석 부리는 것이 서툴러서 뭐든 스스로 짊어지려 하는 면이 있다. 도와주세요, 가르쳐주세요, 말하면 될 텐데, 어째선지 말하기가 어렵다. 귀찮은 일을 부탁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나중에 은혜 갚기를 강요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은혜를 입느니 차라리 혼자 하겠다는 마음.
- 응석 부리기 中



글을 쓰는 것과 남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은 같은 주제라 해도 표현이 상당히 달라진다. 아무래도 글쪽이 찬찬히 시간 들여 사고할 수 있으니 내 생각에 훨씬 가깝다.
-망상 中



이렇게 친한 친구들과 공연을 같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제각기 고민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렇게 공연을 보고, 돈가스를 먹고(그후 케이크도), 올해도 좋은 한 해 보내자고 서로 웃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럴 때면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조금쯤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생이란 대체 무엇일까? 좋은 인생은 어떻게 보내야 할 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지만, 연극의 여운을 가슴에 안은 채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고 있으니, ‘인생, 이런 느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천천히 밀려온다.
-여자들만의 신년회 中



사람들 앞에서 짜증을 내는 사람은 옆에서 보면 불쌍한 기분이 든다. 좀더 냉정해지면 좋을 텐데.
하지만 내가 짜증날 때는 조금도 냉정해질 수 없다.
왠지 최근 나의 짜증 속도가 빨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짜증의 한계가 좁아졌다. 옛날부터 성미가 급하긴 했지만, 느긋한 마음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짜증의 한계 中



외출한 길에 차라도 마실까 하고 커피숍에 들어갔다 평소 외출할 때는 문고본을 가방에 넣고 다녀서 딱 좋은 독서 타임이다.
-옆자리 中



특별히 애호하는 차도 없고, 주문해서 먹는 된장도 없고, 음식 재료는 전부 근처 슈퍼에서 살 수 있는 것뿐. 오랜 세월 애용했던 냄비는 엄마가 어디선가 얻어 온 경품이고, 유일하게 세련된 생활을 동경하며 산 르쿠르제의 빨간 냄비만이, 우리 주방에서 빛나는 존재다. 그리고 그 호화로운 한 점이 오히려 빈티를 돋보이게 했다.
-내 주방 中



오사카와 도쿄에 서로 떨어져 있는 친구지만, 이렇게 한 해에 한 번 만나 사치를 누린다. 좋은 사치다. 사치란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누리기 때문에 빛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소녀스러운 사치 中



그 사람은 마스크를 끼고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콜록콜록 기침을 해서 물어보았다.
“괜찮아요?”
그 사람은 “예, 괜찮습니다. 감기에 좀 걸려서” 하면서 또 콜록콜록콜록.
저기, 내가 말하는 “괜찮아요?”는 ‘나한테 옮지 않을까요?’ 하는 말입니다만….
-약속 中


수락하지 않을 때 나는 되도록 정중하게 거절하지만,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거절하면 답 메일이 없다. 그러게, 7할은 그렇다.
- 거절하고 싶진 않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