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숲을 벗어나 저 앞에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저지대 너머,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다 보니 어둠이 뇌성처럼 떨어지고, 선득한 바람에 잡초가 빠드득 이를 간다. 밤하늘에 별이 어찌나 총총한지 검은 공간이 동이 나다시피 했다. 별은 밤새 쓰라린 호를 그리며 추락하지만 그 수는 도통 줄어들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정신은 알 가능성이 상당하지. 왜냐하면 살려면 알아야 하거든. 자기 마음도 알 수야 있지만 알기를 원치 않지. 정말 그래.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는게 최선이야.
하느님의 눈은 젖어 있네. 노인이 느릿느릿 말을 잇는다. 하느님의 분노는 잠들어 있지. 인간들 앞에서 100만 년이나 잠들어 있지만, 그것을 깨울 힘을 가진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네. 지옥이 다 차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 내 말 잘 듣게. 남의 나라 땅에까지 가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미친 짓이야. 그래 봤자 세상만 더 시끄러워질 뿐이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분명해.
3년 전에 텍사스에 갔었지. 노인이 손을 들어 보였다. 검지 첫 번째 마디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텍사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려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저 세월을 헤아려 보이려는 것이었으리라.
여행자란 으레 다른 이가 이미 걸어간 길을 끝도 없이 가야 하는 운명이기에.
그 총 말이야. 가늠쇠 아래에 라틴어가 은실로 박혀 있지. Et In Arcadia Ego.* 죽음에 대한 글이라더군. 자기 총에 이름을 붙이는거야 흔하지. 달콤한 입술이니 무덤에서 돌아온 맹견이니 갖가지 여자 이름을 갖다 붙이지만 고전을 인용한 인간은 처음이야.
*‘지상 낙원에도 죽음은 있다.’는 의미다.
세상의 많은 것이 신비의 베일로 싸여 있다 해도 세상의 경계는 그 속에 포함되지 않을 터였다. 어차피 세상이라는 것에는 측정 기준도 경계선도 없으며, 그 안에는 더없이 끔직한 생물과 다른 빛깔의 인간과 그 누구도 본 적 없으나 자기 자신의 심장만큼이나 낯설지 않은 존재가 살고 있다.
판사가 빙그레 웃었다. 내 책에 그려지든 아니든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 담겨지고, 그러한 끝없는 존재의 복잡함 속에서 이 세상의 끝까지 목격되는 거라네.
늑대는 열등한 늑대를 스스로 도태시키네. 다른 동물은 또 어떤가? 한데 인류는 예전보다 더욱더 탐욕스럽지 않은가? 본디 세상은 싹이 트고 꽃이 피면 시들어 죽게 마련이야. 하지만 인간은 쇠락이라는 것을 모르지. 인간은 한밤중에도 정도의 한낮이라는 깃발을 올리네. 인간의 영혼은 성취의 정점에서 고갈되지. 인간의 정오가 일단 어두워지면 이제 낮은 어둠으로 바뀌네.
그들은 이튿날 새벽 말들을 일으키느라 분투했고, 평야와 돌산과 버려진 목장의 담과 지붕을 지나 여드레 낮과 밤을 달리게 하느라 분투했다. 사람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주인 잃은 말은 사막으로 사라졌고, 저녁 바람이 재를 쓸고 가더니 밤바람이 남은 장작에게서 불씨를 일깨워 이 세상의 한결 같은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마지막 연약한 불꽃 경주를 열었다.
판사가 거대한 머리를 갸웃했다. 세상의 비밀을 영원히 풀 수 없다고 믿는 자는 두려움과 신비 속에서 살아가지. 결국 미신에 질질 끌려 다녀, 인생에 대한 통제력은 빗방울에 모두 침식당하고서 말이야.
그는 살아남아 서쪽 바다를 볼 것이고, 어떤 일이 뒤따르든 변할 것은 없었다. 그는 그저 매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기에.
인간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 상관이 없네. 판사가 말했다. 전쟁은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져. 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거나 마찬가지지. 전쟁은 늘 존재했네. 인류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전쟁은 인간을 기다렸어. 자신의 궁극적 실행자를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전쟁의 궁극적 과업이었지. 전쟁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다른 수는 없어.
운명은 끝내 피할 수 없어. 판사가 말했다.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지. 자기 운명을 알고서 일부러 반대의 길을 택한 자들도 결국에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운명을 맞게 되네. 운명이란 이곳 세계만큼이나 거대하여 반항자까지도 다 품고 있거든. 너무나 많은 이들이 파멸하고 만 이곳 사막은 너무도 광대하여 우리 마음을 마구 끌어당기지만 사실상 텅 비어 있지. 황량한 불모지일 뿐이야. 사실상 거대한 돌덩어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