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걸 온 더 트레인

uragawa 2015. 12. 31. 23:13

아름다운 햇빛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함께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할 일도 전혀 없다. 바로 지금의 나처럼
이렇게 사는건 여름에 더 힘들다. 햇빛이 넘쳐나 어둑한 곳은 찾기 어렵고, 모두가 밖에 나와 눈꼴사나울 만큼 정력적으로 행복한 기운을 내뿜으며 돌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진 빠지는 일이다. 그들 틈에 끼지 못한다는 건 기분 나쁜 일이다.




가끔은 내가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신체 접촉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던가 기억하려 애쓰다가 멈칫하기도 한다. 단순히 껴안거나, 누군가가 진심으로 내 손을 꽉 잡아준 적이 언제였던가. 가슴이 아려온다.




난 몇시간 전부터 깨어 있었다. 잠이 오질 않는다. 며칠 동안 통 자지 못했다. 불면증은 질색이다. 그것만큼 싫은 게 없다. 누워 있기는 하지만 머릿속은 계속 돌아간다. 똑딱, 똑딱, 똑딱, 똑딱. 온몸이 근질 근질하다. 머리를 밀어버리고 싶다.




남에게 폐를 끼치든 말든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마음을 따라가라고, 대체 누가 말한거야? 그건 순전한 이기심, 모든 걸 자기 손에 넣으려는 욕심일 뿐이다. 미치도록 밉다.




생각하면 우습다. 내가 어쩌다 이 꼴이 됐을까? 어디서부터 내리막길이 시작됐을까? 그걸 막을 수 있었다면 언제였을까? 어디서 길을 잘못 들어섰을까? 




나 혼자만 불행한 것 같았다. 난 외로워졌고, 그래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다가 양이 점점 늘었다. 그러고 나서는 더 외로워졌다. 술 취한 사람 근처에 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난 사람을 잃고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고 사람을 잃었다.




부모들이란 자기 아이들 빼고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아이들이 우주의 중심이 되고, 세상에서 중요한 건 아이뿐이다. 그 외의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기쁨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공허감. 그게 어떤 건지 나는 잘 안다. 그걸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하게 된 생각이다. 인생에 난 구멍들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콘크리트를 돌아 뻗어나가는 나무뿌리처럼, 우리는 그 구멍들을 피하면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구멍들 사이의 틈에 자신을 맞춰 가면서.




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술 때문만이 아니라, 악몽을 꾸기 때문이다. 난 어딘가에 갇혀 있고, 누군가가 오고 있다는 걸 안다. 출구가 있다는 걸 알고 전에 본 적도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고, 그 사람에게 잡히면 소리를 지를 수가 없다. 공기를 힘껏 빨아들였다가 억지로 내뱉으며 애써보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고, 죽으면서 깔딱깔딱 숨이 넘어가는 사람처럼 쉰 목소리로 끽끽거리기만 한다.




나는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창문을 열어놨지만 거실은 덥고 갑갑하다. 아래 거리에서 소음이 들려온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 큰 소리로 깔깔거리는 젊은 여자들의 웃음소리, 지나가는 차에서 울려퍼지는 베이스 기타 소리. 평범한 일상. 하지만 여기서 세상이 끝나가고 있다.




그래, 난 바보다. 거기에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바보일 필요는 없잖아? 앞으로는 바보처럼 살지 않을 거다. 나는 밤새도록 여기 누워,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하리라 다짐했다. 이 집에서 나가 먼 곳으로 떠나는거야. 새로운 직장도 얻어야지. 결혼 전의 성을 다시 쓰고, 톰을 깨끗이 정리하고, 다른 사람이 날 쉽게 찾지 못하게 할 거야. 날 찾을 사람이 있기나 할지 모르겠지만.




생각이 빙글빙글 돈다. 설마 하는 의심에서 절망으로, 다시 절망에서 의심으로.




스콧이 여기 있을 땐 나 혼자 있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가 없을 땐 혼자 있는 걸 못 견디겠다. 난 왜 이럴까? 적막함을 견딜 수가 없다. 그걸 쫓아내려면 큰 소리로 얘기할 수 밖에 없다.




바람이 세게 불고 있으니, 더위가 곧 가라앉을 것 같다. 칼새들이 하늘에서 휙 날아 내려오고, 비가 내리기 직전의 냄새가 난다. 난 그 냄새가 좋다.




나는 침대로 들어가 불을 끈다. 잠들지 못하겠지만 노력은 해봐야 한다. 언젠가는 악몽이 멈추고, 머릿속으로 그 일을 되새기는 짓도 멈추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내 앞에 기나긴 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난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차를 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