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우리 가족이 최고라는 일그러진 애정이 샘솟았다. 순간적으로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붉은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은 엄마는 내가 얄팍한 겨울 부츠를 벗는 걸 도와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내 발가락 하나하나를 손으로 따뜻하게 비벼댔다. “먼저 엄지발가락을 따뜻하게 하고, 이번에는 새끼발가락.” 이 장면에서 버터 바른 토스트 냄새가 났지만, 실제로 그런 토스트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기억 속에서 내 발가락은 아직 모두 성한 상태였다.
거실에 책장들이 죽 있었지만, 꽂혀 있는 책이라고는 자기계발서 밖에 없었다. 《햇살을 열어젖혀라!》, 《파이팅 걸》, 《자책은 이제 그만》, 《일어서서 당당하게》,《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자》,《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계속해서 기운을 북돋우는 당찬 제목들이 주르륵 이어졌다. 제목을 읽어나갈수록 더 비참해졌다.
“모든 가정과 바람이 사탕과 땅콩이라면 하루하루가 크리스마스처럼 즐겁겠지.” 다이앤 이모가 귀가 따갑도록 하던 말이다. 이 말은 어린시절 내내 고민거리였다. 나뿐 아니라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만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걸 끊임없이 되새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죽 안 이루어졌으면 이런 말까지 생겼겠는가. 결국 우리 모두는 자신이 원하는 걸 결코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크리시를 보면 나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늘 불안해하며 나중을 위해 일단 무엇이든 탐욕스럽게 긁어모으고 본다. 과자칩 같은 것 말이다. 빈대 붙는 습성을 지닌 우리는 항상 사람들이 호들갑 떨지 않고 쉽게 내줄 수 있는 조그마한 먹잇감을 찾아다닌다.
열네 살때, 나는 자살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지금은 취미이지만 열네 살땐 소명이었다. 막 개학한 9월의 어느 날 아침. 나는 이모의 44구경 매그넘 권총을 무릎 위에 놓고 아기처럼 쓰다듬었다. 그냥 내 머리를 날려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권총 한 방이면 민들레 홀씨처럼 내 못된 영혼도 사라져 버리겠지. 하지만 다이앤 이모가 집에 돌아와 내 몸뚱이와 피칠갑이 된 벽을 보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모를 그토록 미워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원하는 걸 방해하는 존재였으니까. 그래도 이모에게 그런 꼴을 보여줄 순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과 흥정을 했다. 2월 1일까지 나쁜 생각이 들면 그때 자살하자고. 2월 1일이 되어도 여전히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또 흥정을 벌였다. 5월 1일에, 다음에, 다음에……. 그렇게 해서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예전에 TV에서 아주 현명한 연애전문가가 이런 충고를 했다. ‘낙심하지 마세요. 모든 관계는 실패하니까요. 딱 맞는 사람을 찾아낼 때까지는.’ 내가 맞닥뜨린 이 비참한 숙제에도 이런 식의 응용이 가능했다. 내가 만나본 모든 사람에게 실망하는 건 당연하다. 그날 밤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찾아낼 때까지는.
모든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아무 걱정 없이 사는 빌어먹을 사람들한테. 젠장, 술주정뱅이 러너조차도 벤보다 그럭저럭 문제없이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세상의 쓴맛을 보아야 하는 사람들이 무진장 많았다. 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건 없으며 대부분의 것들은 결국 썩어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벤처럼 깨달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