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두번째 코

uragawa 2014. 11. 15. 21:53

내게도 그런 인생을 보내라는 건가. 농담 마라.아버지는 의무교육이 끝나자마자 조그마한 마을 공장에 취직해 정년까지 거기서 일했다. 평생 이루어 낸 일을 들자면 그저 가족을 먹여 살리고, 불면 날아갈 듯한 이 작은 집의 대출금을 변제했을 뿐인 시시한 남자다.

 

 

 

환경 선진국인 이 나라에 이미 화력발전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전력은 원자력 발전소와 ‘인발’이라고 불리는 인력 발전소에서 공급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편지에 형은 상장이 취소된 후 칸토무라 인발에 보내졌다고 적혀 있었다. 그곳에서 사회를 위해 죽을 때까지 발전용 자전거를 밟는 것이다.

“인발이라고 해도 말이죠. 이제 자전거를 밟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건 휴머놀이라고 해서, 인간을 원료로 한 새로운 바이오 연료입니다. 이 병 속에 들어 있는 건 당신 형을 처리해서 만든 휴머놀입니다.”

 

 

 

항상 이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분명 행복하겠지. 이 녀석한테는 아무 고민도 없는 게 틀림없다.

 

 

 

“당신은 그렇게 끝날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라면 당신을 구할 수 있어요. 속는 셈치고 사무실로 와 봐요.”

“이젠 질색입니다. 당신처럼 말만 번지르르한 패거리에게 지금까지 된통 속아 왔으니까.”

“그렇다면 한 번 정도 더 속아도 상관없잖아요.”

키사라기는 가만히 내 눈을 보았다.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에 고구마 벌레라고 있었잖아. 딱 이런 느낌의.”

“맞아, 맞아. 분명 그 작품에선 전쟁에서 팔다리를 잃었지.”

-폭락 中

 

 

 

 

이 곰팡내 나고 어스레한 곳에서 소변을 마시고 배설물을 먹으면서 바싹 말라 죽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쥐에게 뜯어 먹힌 시체의 어지러이 흩어진 뼈가 발견되는 건 몇 년 후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

“당연하지.”

“혼자 힘으로 도망쳐 봐. 나 역시 마사하루 패거리에게 얻어맞고 차여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어. 모두 자기만 괜찮으면 되는 거야. 이 세상에는 그런 녀석들뿐이라고. 나잇살 처먹고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지 마.”

 

 

 

“자알 기억해 두게 젊은이. 어딜 가도 마찬가지야. 좋은 일 따윈 없어. 왠지 아나?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좋은 일 같은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야. 나쁜 소린 안 하겠네. 여기 있게.”

그건 무슨 논리냐.

“이런 기만으로 가득 찬, 썩어 빠진 세계 따위 망해 버리면 좋겠어.”

-수난 中

 

 

 

영감탱이가 지껄인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빙글빙글 웃으며 메모를 한다. 또 이야기가 빗나가기 시작한다. 영감탱이는 정치가 잘못되었단다. 관려가 잘못이란다. 젊은이가 나쁘단다. 영감탱이가 화를 낸다.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다며 한탄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너, 뭘 동의하는 거냐.

 

 

 

편견은 강한 전염력을 지닌 바이러스 처럼, 한번 만연하면 근절하기가 어렵다.

 

 

 

성실해 보이는 아저씨가 내 앞에 나타난다. 공손한 얼굴로 내게 명함을 내민다. 옆머리를 길러 비어 있는 부분을 덮은 바코드 머리와 이마에 맺힌 약간의 땀. 관자놀이의 점에서 기다란 털이 한 가닥. 성실함이 양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듯한 회사원. 하지만 이런 녀석이 성추행을 한다. 전철 안에서 여고생을 만진다.

-코 中

 

 

 




2012/02/13 - [△텅빈도서관] -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