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열대야

uragawa 2014. 10. 15. 23:43

―흥, 뭐가 간호사야. 백의의 천사가 듣고 놀라서 자빠지겠네.나는 간호사야.

하기야 의사와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간호사가 됐으니까.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 병원에서 일해보니 의사 중에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는 없었다. 영감탱이, 몰상식, 마더 콤플렉스, 불결. 의사라는 직업을 빼면 아무 쓸모도 없는 남자뿐이었다. 게다가 간호사일은 상상보다 훨씬 고됐다. 환자는 제멋대로든지 더럽든지, 아니면 양쪽 다다. 감사하기는커녕 우리를 종처럼 부려먹었다.

열대야 中



“토라노스케, 타고난 재능을 썩히는 아까운 짓은 하지마라. 옛날처럼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이 보상받는 시대는 지났어.”



토라노스케는 가까이에 있는 잔교로 향했다.

콘크리트 제방에는 시계추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파도가 치고 있었다. 제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잠시 까만 수면을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고민해봤자 아무 의미 없다. 자신의 장래에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마 안 되는 선택지에서 뭘 고르든 결국 다다를 곳은 지금 부모님이 있는 곳이다.

꿈도 없이 그저 살아 있기만 한 비참한 인생.

결국에…… 中



마을에 평온이 찾아오기까지 그로부터 며칠이 더 걸렸다.

나는 덧문 틈에 얼굴을 갖다 대고 식인귀 소굴로 변한 마을을 바라보며 이 세상의 끝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잿빛 얼굴을 한 무리에게 뜯어 먹혀 죽고 나서 그들의 동료가 될 것이라고도.



결실의 가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가을.

가을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은 수없이 많지만 뚱보에게 가을은 무섭고 우울하기만 하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9월에 열렸는데 지금 돌이켜보아도 즐거웠던 추억은 하나도 없다.



“책에 인간에게는 냄새가 있다고 적으셨는데요.”

“있습니다. 실로 맛있는 냄새가 나지요.”

“장어라든가 꼬치구이라든가…….”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닙니다. 어쨌든 저도 죽기 전에는 70년 가까이 인간으로 살았지만 결코 맡아본 적 없는 냄새입니다.”

“저한테서도 냄새가 납니까?”

“물론이고말고요. 당신처럼 서른 전후의 여성이 제일 기름이 잘 올라서 식욕이 동하지요. 우후후.”



‘식괴’

‘식인괴물’을 축약한 조어. 소생자의 감정을 상하게 하므로 주요 미디어에서는 ‘좀비’와 더불어 사용을 자숙하고 있다.

마지막 변명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