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64

uragawa 2016. 7. 1. 00:21

사막에서 신기루를 본 것이다. 그런 기분이었다. 끝났다고 아쉬워할 만한 관계도 아니었다. 기자들에게 얻은 믿음은 불면 날아갈 만큼 가벼웠다. 미카미 역시 홍보 개혁을 통해 기자들에 대한 혐오감이 사라졌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64’ ‘14년전’ ‘아마미야 쇼코 유괴 살인사건’을 가리키는 기호로, D현경 관내에서 처음 일어난 강력 범죄사건이었다. 몸값 2천만 엔을 고스란히 빼앗겼고, 납치된 일곱 살배기 소녀는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직 범인은 붙잡히지 않았다.




바깥에는 자극이 있다. 빛이, 계절이, 사람들의 생활이 있다.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불안과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새로운 발견이 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얼굴, 아무것도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마미야가 빼앗긴 것은 감각이나 관련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랑스러운 딸을 잃었다. 그에게는 쇼와도, 헤이세이도 없다. 아마미야는 딸이 없는 세상을 표류하고 있다.




경찰 뿐 아니라 조직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사람과 돈을 쥔 이가 정상에 선다.




아유미의 마음을 망가뜨린 것도 텔레비전일지 모른다.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버라이어티, 아침방송, 광고……. 모두 입을 모아 외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다른 건 몰라도 외모만 뛰어나면 이득을 본다. 이성에게 사랑받고, 출셋길이 열리고, 재미나게 살 수 있다. 요즘은 그런 시대라고 그럴싸하게 떠들어댄다. 아유미는 거짓된 세계에 물들었다. 실속 없고 저속한 정보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자신을 잃었다.




자신에게 사직서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지금, 업무 내용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닥치고 맡은 일을 처리한다. 성과를 내서 마무리한다. 그뿐이다.




펜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분, 20분…….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조바심을 내면 낼수록 머릿속의 구멍이 점점 커져가는 것 같았다.

대체 뭐하는 거지.




“무슨 일 있어요?”

“별일 아니야.”

“얼른 씻어요.”

“당신 먼저 씻어.”

“난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럼 일찍 쉬어. 나도 쉴 테니까.”

불현듯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했다. 오늘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로를 배려하며 짐짓 태연한 척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생활을 계속한다.




해묵은 상처가 아니다. 인식해야 하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한 상처를 붕대 밑에 감추고 있는 현실이다.




요즘 사람들은 시선은 메마르고 냉정하다. 경찰 역시 민간조직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오욕에 찌들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인이 경찰에게 바라는 건 정의도, 친근함도 아닌 안전을 보장하는 ‘기계’로서의 역할이다. 자신과 가족의 생활 반경에서 신속하게 위험을 제거하는 고성능 기계를 원할 따름이다.




그래도 조직은 돌아간다. 어쨌거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형사로 살아온 세월이 짧아도, 실적이 없어도, 부장 자리에 앉으면 누구나 형사부의 우두머리다운 얼굴을 지니게 된다. 몇 건 안 되는 실적을 뻥튀기하듯 부풀려 이야기하고, 사건이 일어나면 원숭이처럼 흥분해 고함을 지르며,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수사 정보의 홍수 속에서 놀아나다 보면 어느샌가 시간을 거슬러 오르듯 형사부에 몸도 마음도 물들게 된다.




잘못한 게 없는 사람의 사과를 받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




미카미도 스물여덟 해 동안 부하로 살아왔기에 잘 알고 있다. 진심으로 순종하는 부하란 존재하지 않으며, 부하의 내면을 파악하고 있는 상사 역시 없다. 그런데 저 혼자 멋대로 신이라도 된 양 착각한다. 부하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 쓸지를 생각하며 이 친구는 이렇다 저렇다 분류해 저 편할 대로 알기 쉬운 단색의 라벨을 부지런히 붙여왔다.

가정에서도 그랬다.

그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조신하고 상냥한 아내, 응석받이지만 다정다감한 딸, 어떤 계기 에서인지 그런 라벨을 붙인 뒤로는 5년, 10년이 지나도록 확인도, 수정도 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




조직 내에서 입장이 난처해질 때마다 가족을 핑계 삼아 인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알고 있었다. 가정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조직 속에서 제자리를 잃으면 살아갈 수 없다. 자신이 그런 남자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한, 숨을 거둘 때까지 스스로에 대해 설명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마음이 추하게 일그러졌다.




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에 정의나 불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내가 죽고 나서는 종일 텔레비전을 보는 게 일과였고, 주로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딱히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았다고 했다.




홍보담당관의 직책을 다했다. 그러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앞으로 더 많은 걸 잃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은 고요했다. 불안도, 회한도 모두 깊숙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수면은 거울처럼 맑았다. 그게 유일한 구원이었다.




“아무리 아유미의 마음을 헤아리려 해도, 우리한테는 불가능 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부모라고 자식 마음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미카미는 움찔했다.

“무슨 소리야. 16년이나 한가족으로 살았는데. 당신이 낳고, 키우고…….”

“시간은 상관없어요. 모르는 건 아무리 애써도 모르는 거라고요. 부모 자식도 어차피 남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에요.”




익명의 벽 너머에서는 아무리 기상천외한 이야기도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다. 그 어떤 전개도 용납된다.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익명이랑 전능한 신이며, 무한의 선택지를 허용하는 구조는 망상 그 자체다.




“많이 힘든가?”

말하고 나서야 그 말이 미나코의 입버릇임을 꺠달았다. 오랫동안 미나코도 이런 마음이었으리라. 할 수만 있다면 대신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움. 대신할 말이 없으니 입버릇이 된 것이다.




조직에서 이기는 건 그런 이들이다. 비밀을 흘리지 않고 오롯이 가슴에 품은 이들이 살아남는다. 자신의 비밀을, 남의 비밀을 입 밖에 낼 때마다 패배를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