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과 함께라면, 하고 나는 결혼을 결심했을 때 생각했다.
이런 남자와 함께라면, 절망적으로 뒤얽히지 않고,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하지도 않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불행의 그림자라고는 한 점도 없는 그의 젊음에 안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것일까. 아니 어쩌면 행복 따위는 딱히 바라지 않는 것 아닐까. 어른이 된 지금도 나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1장 2008년 6월 하 나 와 낡 은 카 메 라
하나는 등 뒤에 마치 폭풍우를 거느리고 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일기 예보에서 태풍 소식을 들은 초등학생처럼 이제나저제나 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불안감을 느꼈다.
-2장 2005년 11월 요 시 로 와 오 래 된 시 신
“’그것’은 숨어서 살고 있지.”
“네?”
“’그것’은, 살인자는, 사회적인 존재인 우리들 속에 숨어 살고 있어. 자신을 위해서 태연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겉보기는 어엿한 인간이지만, 한 껍질 벗겨 내면 돼지 같은 인간이지. 자신을 위해서만 살고, 자신과 자신의 육친만 사랑하는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양심조차 없는 괴물이지. 평소에는 조용하고 아주 선량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래 얼굴을 드러내. 내 눈은 ‘그것’을 가려낼 수 있어.”
-3장 2000년 7월 준 고 와 새 로 운 시 신
‘아빠, 많이 춥겠다.’
그런 생각을 했더니, 코끝이 찡하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둘이서만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온 탓인지, 나는 간혹 아빠를 나라고 착각하곤 한다. 그럴 때면 내가 완전히 사라지고, 단박에 마음속이 아빠로 차오른다.
가만히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여기서는 겨울의 오호츠크 해가 저 멀리까지 보인다.
거뭇거뭇한 바다, 부서지는 파도가 얼음 가루처럼 하얗고, 한없이 어둡고 묵직하고 신비로운 바다. 유빙의 도래를 알리는 하얀 띠가 수평선 언저리에 부옇게 떠 있었다. 얼어 가는 바다는 셔벗처럼 전체가 눅진하다. 이 고장에서는 그런 바다를 ‘겨울잠을 청하는 바다’라고 한다. 적막하고 거대한 풍경.
아빠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아빠는 그저 고개 숙인 채 빵에 잼을 바르고 있다.
어디까지가 뭍이고 어디서부터가 바다인지.
우리로서는 도저히 선을 그을 수 없다.
무슨 일이든, 그렇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만약 지금 죽는다면 여기서 시간이 멈춘다, 고 생각했다. 마음이 단단하게 이어져 있는 지금 죽으면, 차갑고 외로운 뼈가 되어서도, 그 후에 북쪽 땅과는 거리가 먼, 한없이 먼 메마른 땅에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이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도, 다시 태어나도.
-4장 2000년 1월 하 나 와 새 카 메 라
하늘이 어렴풋한 회색으로 변했다. 검은 바다를 헤치고 달리는 이 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밤이 이제 곧 밝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한없이, 살아 있는 것은 나와 이 사람뿐인 차 안에서, 이 세상을 바깥을 달리고 싶은 묘하고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일 때문에. 야근을 했어. 일어나 있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절반쯤 남은 볶음밥 접시를 보았다.
“외로웠니?”
고개를 기울이고 잠시 생각했다. 외롭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기다리고 있었더니 나를 위해 돌아와 주었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또 찡해졌다.
-6장 1993년 7월 하 나 와 태 풍